가수 겸 배우 故유채영이 떠난 지 9년이 흘렀다.
故유채영은 지난 2014년 7월 24일 향년 4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2013년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투병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유채영. 당시 남편 김주환 씨와 평소 절친했던 배우 김현주, 개그우먼 박미선, 송은이, 이성미가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유채영은 지난 1989년 그룹 푼수들로 데뷔해 1994년 혼성그룹 쿨, 1995년 혼성듀오 어스로 활동, 1999년에는 솔로 가수로 전향해 이모션'(Emotion) 등으로 활동하며 사랑을 받았다.
가수 뿐만 아니라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인 유채영은 2002년 영화 '색즉시공', 색즉시공2'(2007), 드라마 MBC '황태자의 첫사랑'(2004), 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2005~2006), KBS2 '추노'(2010), SBS '패션왕'(2012) 등에서 개성 강한 톡톡 튀는 역할로 출연해 극에 재미를 더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린 유채영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넘치는 끼와 매력을 발산하며 대중들의 웃음을 책임지기도 했다.
유채영은 지난 2008년 1세 연하의 김주환 씨와 10년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 2막도 잠시, 2013년 건강 검진 결과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특히 투병 중에도 밝은 모습으로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며 방송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유채영의 모습을 많은 팬들은 여전히 기억하며 그녀를 그리워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유채영. 김주환 씨는 2014년부터 매년 기일마다 유채영의 팬카페에 애틋한 편지로 변함없는 사랑과 그리움을 전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지난 2021년 2월에는 "2014년에 자기 떠나 보내고 7년이네. 힘들게 버텨왔네. 참 많이 보고 싶고 너무 힘든 시간들이였다"라면서 "인생에서 죽는 날까지 가장 많이 사랑했고 가장 많이 아팠던 사랑으로 영원히 기억할게. 다시 만나면 사랑만 하자 아파하지 말고 제발"이라는 글을 남기고 9월에도 "내 사랑 너무 보고 싶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제일 많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할게.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금방 또 갈게"라고 남겨 먹먹함을 안기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장지는 경기도 분당 서현 추모공원이다.
가수 탤런트 영화 배우 유채영 프로필
유채영 사망 나이 키 학력 고향 본명 몸무게 혈액형 데뷔 소속사 종교
출생: 1973년 9월 22일, 대한민국
사망 날짜/장소: 2014년 7월 24일, 서울특별시 세브란스병원
키: 162cm
배우자: 김주환 (2008년–2014년)
소속 그룹: 쿨 (1994년 ~ 1995년)
이름
유채영
본명
김수진
출신지
경기도 안양시
출생
1973년 9월 22일
사망
2014년 7월 24일 (향년 40세)
신체
162cm, 40kg, O형
데뷔
1989년 3월 하이틴 잡지 '여학생' 모델 데뷔.
경력
2010년 3월: 북인천세무서 홍보대사
1995년: 그룹 'US' 멤버
1994년: 그룹 '쿨' 멤버
1990년: 그룹 '푼수들' 멤버
학력
안양예술고등학교 무용과 졸업
소속
150Entertainment
종교
개신교
가수활동앨범입니다.
풍수들 2집 'Poonsoo II' (1990.08 서울앨범)
쿨 1집 The K;ul (1994.06 워너뮤직코리아)
어스 1집 「The Us Rage To See The Day We Rule!」(1995년 12월 27일 BMG - 초판)
솔로 입니다
쾌속 (1996.08 신세계음향공업)
1집 에모션(Emotion) (1999.10 신나라뮤직)
2집 시크릿 다이어리(A Secret Diary) (2001.09.21 SM엔터테인먼트)
Another Decade (Digital Single) (2009.04。03)
1988년 중학생 시절 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등장한 후 그룹 <풍수들>로 가요계 데뷔했습니다. 이후 혼성그룹 쿨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유로팝 듀오 어스(US)와 솔로 활동을 거쳐 다방면에서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대중에게 많은 호감을 얻은 멀티엔터테이너입니다.
주로 가수, 배우, 연예인으로 활동하다가 2007년부터 2010년경까지 각종 연예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2014년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립다는 평가를 받는 호감형 탤런트였습니다.
활동 내내 아주 밝고 재미있는 말투와 오버액션을 선보이며 여러 영화에서 감초 역할로 등장했는데, 그의 실제 성격 또한 밝고 소탈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제 그의 성격은 오히려 내성적인 편이었다고 알려져 심근이 매우 여려서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천사 같은 성격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유채영의 죽음에 아쉬움을 표하는 연예계 인물들이 굉장히 많았을 정도입니다. 특히 절친했던 배우 김현주는 다시는 유채영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본업인 가수 활동에서도 탁월한 춤솜씨와 시대를 앞서간 유로댄스,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적극 도입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재능이 넘치는 인물입니다. 히트곡으로는 <지금 이대로> 등이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보여준 오버액션을 하면서 심하게 망가지는 모습은 실제 성격과 매우 다르며, 시청자들의 행복을 위해 유채영이 내성적인 성격을 숨기고 방송에 임한 것은 꽤 유명한 에피소드입니다. 그리고 유채영과 관련된 어떤 인물도 유채영의 평소 행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고, 모두 입을 맞추며 "아주 착했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활동 당시에도 모 방송에서 안티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방송이 있었는데, 유채영에 대한 비판을 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고, 남편에게 청혼하는 방송 <체인지>에서도 한없이 마음씨 착하고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평소 말괄량이 이미지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었을 정도로 실제 성격과 방송에서의 이미지는 극히 달랐고 오히려 행실이 좋고 마음씨 좋은 연예인으로 매우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유채영이 사망한 이후 아직도 많은 대중과 방송인들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생전 그와 각별했던 쿨 이재훈이나 배우 김현주는 사망 후 두 차례 언급을 통해 유채영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팬들의 소중한 마음도 대단해서 길거리에서 팬들을 만나서는 너무 감사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줬다는 일화도 있었고 팬카페 '가디스'가 생긴다고 모 방송 녹화 중 눈물을 흘리며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유채영이 팬카페에 수년간 계속 글을 남겨준 팬들을 직접 만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그 회원분이 어디 사는지만 말해주시면 찾아가겠다는 내용을 담은 게시글도 존재해 연예인 의식 하나 없이 팬에 대한 사랑을 너무 감사하는 겸손한 연예인이었다.
가수로서의 역량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고 어떻게든 곡도 좋게 뽑아오지만 상황이 따르지 않아 운이 극히 좋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 때문에 숨어있고 가창력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굉장히 특이한 음색에 음역대도 은근히 넓어요. 게다가 늘씬한 몸매에 이국적인 미모까지 갖추고 있어 춤 실력도 아무런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수준이 높습니다.
사실 가수 경력은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정도로 슬펐습니다. 데뷔 그룹 쿨은 그녀가 빠진 이후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리며 수많은 스테디셀러 히트곡을 내고 노래방 기기 등록곡 2위를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솔로로서 대성할 기회였던 '에모션'은 모든 것을 갖춰놓고 소속사를 위해 기괴한 콘셉트로 나온데다 이정현이라는 괴물급 상대를 위해 묻혀버렸습니다.
이후에도 유로팝에 일렉트로니카를 접목한 'Shake' 같은 좋은 곡을 골라왔지만 오히려 시대와 트렌드를 너무 앞서서 실패했습니다. 다만 이때는 예능에서 너무 망가지는 콘셉트로 어필하던 이미지 때문에 대중들이 가수로서 유채영을 어색하게 여긴 탓도 있었습니다. 이후 김지훈과 트로트 혼성 앨범을 내기로 했지만 김지훈의 고사로 불발됐습니다. 게다가 10년 만에 복고풍의 '좋아요'로 겨우 컴백해보니 이번에는 콘셉트가 당시 주가를 날리던 손담비와 중복. 이 때문에 노래 제목을 바꾸고 의상 콘셉트를 바꿨지만 몇 달 동안 활동도 못하고 끝났습니다.
에모션 1집입니다
그녀의 독특한 음색이나 왕조현을 닮은 외모, 전체적인 분위기가 호주 출신 팝스타 카일리 미노그와 비슷한 점이 많아 가끔 비교되기도 합니다. 유채영이 발표한 곡을 오디오로만 들어보면 충분히 가능했던 일입니다.여기에 뛰어난 외모와 훌륭한 댄스 실력에다 무서운 예능 퍼텐셜까지 합치면 무리가 아니다. 유채영도 카일리 미노그도 둘 다 연기를 꽤 잘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가수로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연기나 예능감이 굉장히 뛰어나고 여러 작품에 감초 역할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연예 활동 당시에도 큰 오버액션을 하거나 적당히 춤추는 것이 주된 콘셉트였음에도 거의 안티가 없고 호감도가 높은 연예인이어서 현재까지도 대중들에게 유채영은 해피 바이러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위암 투병과 사망입니다.
그 불운이라도 언젠가는 이겨내리라 생각했습니다만... 2013년 10월 몸살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를 위해 당시 진행 중이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김경아에게 넘겼습니다. 이후 2014년 7월 21일 병세 악화로 사경을 헤매는 상태라는 기사가 실렸고 결국 24일 오전 8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것도 41살 생일이 불과 두 달 전이었어요.
위암은 국내에서 일반적인 암이지만, 20대에서 30대에 발병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다만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발견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예후도 좋지 않습니다. 유채영도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했는데 그때는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돼 일부 암세포만 제거하고 약물 및 방사선 항암치료에 몰두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장진영과 김상진 그리고 울랄라 세션의 임윤택입니다. 저희도 20~30대에 위암을 앓고 있었는데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만년에 라디오를 진행할 때도 본인이 처한 환경이 어떻든 항상 애청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일요일 방송 때는 다음날이 월요일임을 감안하여 애청자들이 월요병에 걸리지 않도록 특히 큰 웃음을 유발시켜 조금이나마 시름을 덜어주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대중을 생각하는 진정한 연예인이었고 주변 평판도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안티도 거의 없었어요. 이렇게 대중을 생각하고 배려심 많은 연예인을 잃게 되어 유감입니다. 그리고 이를 방증하듯 유채영의 빈소에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조문을 왔습니다. 평소 친한 사이였던 연기자 김현주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유채영 생전에 한 방송에서 나온 장면에서 고인의 생전 식습관이라고 기사를 쓰거나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자칫 고인들립으로 간주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암이라는 것은 단순히 식습관뿐만 아니라 타고난 체질, 유전,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영향을 받는 질병입니다. 유채영은 과거 앨범 제작자로부터 억원대 사기를 당해 심히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었지만 위암 발병 원인은 이와 무관치 않다. 유채영이 사망한 지금에 와서 과거 식습관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사람에 의해 '죽을 만하니까 죽었다'와 같은 곡해된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또한 해당 방송에서 흘러나온 유채영의 식습관 문제는 모두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가수 겸 탤런트 유채영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유채영의 남편, 직업사업가 김주환 씨(45)는 유채영의 5주기 하루 전인 23일 유채영 팬카페에 자기야 내일 일찍 갈게요라는 제목의 편지를 남겼다.
김 씨는 내일 아침 일찍 가겠습니다.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은 얼마든지 좋지만 굳이 내가 떠난 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나한테는 달력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썼어요.
이어 "어쨌든 저를 만나러 갈 것 같으니까 빨리 가고 싶어요. 예쁜 모습으로 가야 하니까 가기 전부터 울면 안 돼요. 조금만 더 참다가 내 앞에 가서 울어요. 일단 멋있고 예쁘게 꾸미고 인사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1997년 모임에서 만나 10여 년간 친구로 지내던 두 사람은 2006년 연인으로 발전했고 2008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후 유채영은 2013년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약 9개월 뒤인 2014년 7월 2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김씨는 2014년부터 꾸준히 팬카페에 편지를 남기며 유채영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항상 유채영의 남편으로 남아요. 내가 사랑하는 내 아내는 당신 하나뿐이니까요. 너무 보고싶어요. 내 사랑'이라는 글을 남기며 여전히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유채영은 1989년 그룹 풍수로 가요계 데뷔, 1994년 그룹 쿨 멤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솔로 가수로 전향한 유채영은 '이모션'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